전북에서 가볼 만한 곳으로 유명한 김제 금산사는 전라북도 김제시 금산면 모악산 남쪽 기슭에 자리하고 있는 대사찰로 호남 미륵신앙의 도량으로 잘 알려진 곳입니다. 전북 김제에 가시면 꼭 한 번쯤은 가볼 만한 곳으로 적극 추천드리고 싶은 사찰입니다.
김제 금산사 입구의 매표소에서 금산사까지 가는 1㎞의 길은 벚꽃길로도 유명하답니다. 이 길은 호남 4경 중에 제1경으로 꼽힐 정도로 아름답고, 벚꽃이 필 때에는 모악산 능선으로 이어지는 진달래 꽃도 만발하여 수많은 등산객이 찾는 곳이기도 합니다.
김제 금산사로 가는 길에는 오래된 많은 나무들이 있는데, 그중에서도 단풍나무가 나의 눈길을 잡았습니다.
가을에 금산사를 오면 아름다운 단풍을 원 없이 감상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게 하는 사색하기 좋은 길입니다.
전북 김제에서 꼭 한 번은 가볼 만한 곳으로 금산사로 오르는 산길에서 제일 처음 만나는 건물이 일주문이다.
일주문에는 모악산 금산사라는 현판이 걸려 있으며, 현판 글씨는 일중 김충현의 글씨입니다.
일주문은 신성한 가람에 들어서기 전에 세속의 번뇌로부터 부산히 흩어진 마음을 하나로 모아 진리로 향하게 하는 상징적인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김제 금산사 보제루
김제 금산사 대적광전
금산사 미륵전의 서쪽 가람의 중심에 자리한 대적광전입니다.
금산사 대적광전은 비로자나불을 가운데에 두고 좌우에 아미타불과 석가모니불을 모시는 전각으로 '화엄경'의 연화장 세계를 상징합니다.
연화장 세계를 다른 말로 '대정적의 세계'라고 하는데, 여기서 대적광전의 이름이 유래하였다고 합니다.
현재 대적광전 안에는 왼쪽에서부터 5 여래인 아미타불, 석가모니불, 비로자나불, 노사나불, 약사불이 있으며, 이들 사이에는 왼쪽에서부터 6 보살인 대세지보살, 관음보살, 문수보살, 보현보살, 일광보살, 월광보살이 서 계십니다. 이와 같이 많은 부처님을 봉안하기 위해서 앞면 7칸, 옆면 4칸의 큰 규모로 조성하였습니다.
금산사 대적광전은 1968년에 보물 제476호로 지정되었으나 1986년 화재로 전소되면서 보물 지정이 해제되었고, 1990년에 지금의 건물로 복원하였다고 합니다.
김제 금산사 미륵전
국보 제62호인 금산사 미륵전은 미래의 부처인 미륵부처님의 불국토 용화세계에서 중생을 교화하는 것을 상징화한 법당입니다. 즉, 미륵신앙의 근본도량을 사찰 속에 응축시킨 것이 미륵전으로 먼 미래의 새로운 부처님 세계에서 함께 성불하자는 것을 다짐하는 참회와 발원의 장소입니다.
금산사 미륵전은 신라 경덕왕 21년부터 혜공왕 2년 사이에 진표율사가 가람을 중창하면서 미륵보살에게 계를 받았던 체험 그대로를 가람에 적용하여 세웠다고 합니다.
금산사 미륵전은 통일신라 말 진표율사가 33척의 철미륵불상을 모신 후 조선 인조 때 수문 대사가 3층 미륵전으로 중수한 건물입니다.
미륵전 안쪽 중앙에 미륵불, 양쪽에 법화림보상과 대묘상보살이 모셔져 있습니다.
미륵부처님은 업의 윤회로부터 벗어나 깨달음의 길로 인도하시는 희망의 부처님입니다.
김제 금산사 육각다층탑
금산사 대적광전 오른쪽 앞마당에는 보물 제27호인 육각 다층탑이 있습니다.
대다수의 탑은 밝은 회색의 화강암으로 조성되지만, 금산사 육각 다층탑은 벼루를 만드는 점판암으로 제작된 것이 특징입니다.
각 층마다 체감 비례가 적절하고, 몸돌과 지붕돌 각 면의 조각이 섬세하며, 뛰어난 조형미를 갖추고 있는 탑입니다.
김제 금산사 석련대
금산사 대적광전에서 동남쪽으로 약간 떨어진 곳에 보물 제23호 석련대가 있습니다.
석련대는 불상을 올려놓는 연꽃 모양의 받침대로 본래의 위치는 알 수 없고 통일신라와 고려 초기 사이에 제작된 좌대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금산사 석련대는 마치 여러 개의 돌로 구성된 것처럼 보이지만 하나의 화강암으로 만들어졌다고 합니다.
김제 금산사 오층 석탑
금산사 미륵전의 북쪽 위 송대에는 보믈 제25호인 오층 석탑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김제 금산사 오층 석탑은 고려 경종 4년(979)부터 성종 원년에 걸쳐서 세워졌다고 합니다. 원래는 9층이었는데. 현재는 5층 석탑으로 남아 있는데, 그 당시에는 윗 기단 사리공에 석탑의 정광여래 사리 2과, 석가여래 진신 사리5과, 청동 불상 등을 모셨으나, 이후 정광여래 사리는 분실하여 총 3과가 되었고, 사리를 제외한 유물들은 금산사 성보박물관에 보관하고 있다고 합니다.
사리공 - 탑에서 사리 등을 모시는 공간을 이르는 말
진신 - 진리의 몸이라는 뜻으로 깨달음을 구하여 중생을 교화하려는 사람을 이르는 말
김제 금산사 적멸보궁
적멸보궁은 석가모니 부처님의 진신사리에 직접 예불을 드리기 위해 지은 전각으로 부처님의 분신과 다름없는 사리를 모시기 때문에 전각 안에 불상이나 불화 등은 모시지 않으며 '전'이나 '각'보다 더 높은 의미에서 '궁'이라고 합니다
김제 금산사 뒤편에는 금강계단이 있으며, 그 그 중앙에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신 종 모양의 탑이 있습니다.
적멸보궁 안에는 불상을 모시지 않고, 건물의 뒤쪽 벽에 금강계단에 있는 사리탑에 직접 예불을 드릴 수 있도록 열리는 부분을 작게 마련하여 놓았습니다. 원래 이 자리에는 나한전이 있었는데, 1998년 금강계단을 정비하면서 나한전을 대적광 뒤쪽으로 옮기고 현재의 적멸보궁을 새로 지었습니다.
금산사 범종각
범종각은 범종, 법고, 운판, 목어의 네 범음구를 봉안한 전각으로 의식, 예불, 공양 시간을 알릴 때 각각의 기물을 사용합니다.
범종은 사찰에서 시각을 알리거나 여러 가지 의식을 행할 때 사용됩니다.
김제 금산사 범종각은 앞면 3칸, 옆면 2칸의 팔작지붕으로 사물의 소리가 널리 퍼지라는 의미에서 사방에는 벽체를 세우지 않고 지었다고 합니다.
※ 범음구 - 부처님의 말씀인 범음을 만드는 도구
장엄하게 울리는 범종 소리는 지옥, 아귀, 축생, 아수라, 사람 등 일체중생을 제도한다는 의미를 갖고 있는데, 법고 소리는 부처님의 말씀이 널리 퍼져 중생이 축생의 고통에서 벗어나기를 기원합니다.
운판의 맑고 은은한 소리는 허공의 날짐승들에게 부처님의 가르침을 전하고, 목어는 잠잘 때에도 눈을 뜨고 자는 물고기와 같이 항상 깨어 있으라는 뜻과 함께 물속의 중생을 제도한다는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 운판 - 절에서 재당이나 부엌에 달아 놓고 시간을 알리려고 치는 기구
보물 제827호 김제 금산사 대장전
김제 금산사 대장전은 대장경을 보관하려고 만든 목탑 양식의 전각으로 정유재란 깨 왜군의 방화로 불에 타고 없어졌는데, 인조 13년(1635)에 미륵전 앞에 다시 세워졌는데 1922년에 현 위치로 옮겨 놓았다고 합니다.
대장전 지붕 위에는 금강 계단과 오층 석탑에서 볼 수 있는 복발과 보주가 장식되어 있습니다. 본래는 금산사에서 간행된 불교 경전 등을 건물 내부에 보물처럼 보관하였지만, 경전 등이 유실되자 석가 삼존상을 봉안하였다고 합니다.
복발 - 탑의 노반(꼭대기 층의 네모난 지붕 모양의 장식) 위에 주발을 엎어 높은 것처럼 만든 장식
보주 - 탑이나 석등의 맨 꼭대기에 얹은 구슬 모양의 장식
김제 금산사 석등
석등은 부처님과 조사 스님께 등불을 공양하기 위해서 금당이나 부도전 앞에 세우는데, 김제 금산사 석등은 원래 미륵전 앞에 있었는데 1922년에 대장전을 이전할 때 지금의 위치로 옮겨 놓았다고 합니다.
김제 금산사 명부전
금산사 대적광적의 좌측으로 대장전과 나란히 명부전이 있습니다.
명부전은 지장보살을 모시는 전각으로 시왕과 판관, 녹사, 동자 등을 봉안합니다.
지장보살은 "지옥에서 고통받는 중생들을 구원하는 분으로 스스로 지옥에 들어가 지옥이 텅 비지 않는다면 결코 성불을 서두르지 않고, 육도의 중생을 다 제도한 후 깨달음을 이루리다."라고 맹세하였습니다.
김제 금산사 명부전의 내부 불단에는 중앙에 지장보살이 있고, 양 옆에는 중생들의 악한 마음을 없애 준다는 무독귀왕과 사후 세계를 경험하고 자신이 본 바를 세상에 알린 보명존자가 서 계십니다. 그리고, 재판관인 10명의 시왕과 재판을 보조하는 판관, 실무 관리인 녹사 그리고 불법을 보호하는 인왕상이 서 계십니다.
김제 금산사 노주
금산사 대적광전 오른편에는 독특한 모양의 노주가 있습니다.
김제 금산사 나한전
금산사 대적광전 뒤에는 나한전이 있습니다.
'나한전'은 깨달음을 얻은 불교의 수행자인 아라한을 모신 전각으로 응진전이라고 합니다.
'아라한'은 수행의 가장 높은 경지인 아라한과를 이루어 부처님의 말씀을 계승하는 역할을 합니다.
김제 금산사 삼성각
전북에서 가볼 만한 곳으로 꼽히는 김제 금산사는 백제 법왕 원년(599)에 창건되어 신라 혜공왕 2년 진표율사가 금당에 미륵 장육상을 모시고 도량을 중창하여 법상중을 열러 미륵신앙의 근본 도량으로 삼았습니다.
김제 금산사는 후백제 견훤이 아들 신검에 의하여 유폐되었었다고 전해져내려오고 있으며 고려 문종 33년(1079) 혜적 왕사가 대사구, 봉천원, 광교원 등을 설치하여 전성기를 이루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 후 정유재란 시 80여 동의 전각과 산내 암자가 왜군의 손에 전소되는 비운을 겪기도 한 곳입니다.
선조 34년(1601) 수문 대사가 10여 명의 도반들과 함께 35년 간에 걸쳐서 복원불사를 추진하여 대사구 지역만 일부 재건하였습니다.
한국 불교의 정화와 중흥을 위해 진력하던 월주 화상이 1961년에 주지로 부임한 후 도영. 도법 등 도제들과 사부대중의 원력을 모아 대적광전, 미륵전, 대장전, 하서전, 방등계단, 삼성각, 적멸보궁 등을 중건 중수하고 보제루, 일주문, 상서전, 서래선원, 범중각, 종무소, 향적당, 보현당 설법전, 만월당, 성보박물관, 적묵당, 나한전, 조사전 등을 새로 건립하여 대사구를 완전 복원하고 확장하였습니다.
김제 금산사는 1986년 원인 모를 화재로 대적광전이 소실되었으나 월주화상의 원력으로 도제들과 사부대중의 협력을 받아 복원하였으며, 전주 시내에 전북불교 회관을 건립하여 전북지역의 포교를 맡고 있는 호남 제일의 수도와 교화의 중심 도량으로 그 면모를 갖추어 미륵십선운동을 활발히 전개하고 있는 사찰입니다.
사찰에서는 마음가짐과 행동을 조심해야 합니다.
사찰에서는 묵언하시고, 법당 앞을 지나거나 스님을 만날 때는 합장으로 인사를 해야 합니다. 뒷짐을 지거나 절대 팔짱을 끼지 않아야 합니다. 그리고, 상대에 대한 배려, 예의, 존중의 마음을 갖도록 노력해야 하겠습니다.